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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엄씨 친구의 본관을 찾아 떠난 영월여행 세번째 이야기-영월 하송리 은행나무

안녕하세요~ 페니크림입니다.

작년 가을에 다녀왔던 영월여행기는 도대체 언제 끝날까요?(웃음)

정말 오랜만에 돌아온 페니크림의 영월여행기입니다.

오늘은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좀 짧게 끝날 것 같아요~

오랜만에 글 쓰니까 워밍업으로 생각해주세요.

 

영월 1000년 역사 하송리 은행나무

저희가 제천에서 출발해 영월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첫번째로 간 관광지이자 가장 중요하게 여긴 곳이 바로 이곳!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입니다.

왜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는 조금 이따가 설명드릴께요.

우선 이 은행나무에 대해서 조금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나무는 높이가 23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가 14.5m, 밑둥 둘레가 13.8m에 이르는 큰 나무로, 가지는 동서로 22.5m, 남북으로 22m정도 퍼졌으며, 나무의 나이는 약 1,000년(최대1,200년)이상으로 추청된다.
전설에 의하면, 이 나무 속에 신통한 뱀이 살고 있어, 개미, 닭, 개, 등과 같은 곤충과 동물들이 접근하지 못하며, 아이들이 이 나무에서 떨어져도 큰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전한다.
또한 마을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라고 믿고 있으며, 예로부터 이 나무를 신령스러운 나무로 여겨, 음력 7월 12일에 치성을 드리면 아이를 얻을 수 있다고 믿어왔다.
예전에는 이 곳에 대정사라는 절이 있어, 그 절터 앞에 있던 나무로 알려지고 있으나, 지금은 많은 주택이 들어서 있어, 도시 속에 위치하게 되었으며 마을 사람들은 신목으로 숭배한다.'

위의 글은 안내도에 나와있는 설명입니다.

 

이 외에도 은행나무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하나 더 알려드릴께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는 북쪽 가지가 부러지고, 8.15 광복때는 동쪽 나뭇가지가 부러져 국가의 슬픔과 기쁨을 예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이 은행나무를 신목으로 소중히 여긴다고 합니다.

 

근데 단지 이 이유때문에 저희가 이 곳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걸까요?

물론 1,000년 된 나무를 쉽게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저희의 여행테마는 엄씨 본관을 찾는 여행이잖아요?

 

우리가 이곳을 가장 먼저 찾아온 이유는 예로부터 이 은행나무영월 엄씨의 시조인 엄임의(嚴林義)가 심었다고 전해져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D

실제로 나무 앞에 영월 엄씨의 종문이 석상에 세겨져 있었어요.

한자라 뭐라고 써있는지는 몰랐지만 종문이라는게 그 가문의 엠블럼이라고 합니다.

종문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은행나무 잎인걸 알 수 있어요. (신기방기)

 

천년전에 제 엄씨 친구의 시조님이 심으신 은행나무라고 생각하니 정말 멋지지 않나요?

그 분이 심은 나무가 신목이 되어 국가의 중대사한 일이 생길 때 미리 알려주고, 아이들을 지켜주며,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해줬다고 생각해보세요.

처음엔 나무의 크기에 놀라고, 한나무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하기 힘든 양의 은행(씨)들에 놀랐습니다. (여행시기가 가을이였습니다.)

정리해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천년전 친구의 시조님이 심으신 은행나무를 천년후에 그의 자손인 제 친구가 와서 그의 얼을 느끼고 갔다고 생각하니 엄청 큰 감동이 밀려오네요.

제 친구 엄양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이곳에 와서 많은 것은 느끼고 갔습니다.

그리고 엄양의 기도를 끝으로 저희는 다음 장소로 이동하게 됩니다.

다음은 엄양의 어떤 조상님의 얼을 느끼고 왔을까요? 다음 포스팅을 기약하며 오늘은 이만 총총.